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훈(좌완투수)/선수 경력 (문단 편집) === 1998 시즌 === 1997년 시즌이 끝난 후 LG 구단 측에 돌연 해외 진출 의사를 밝혔다. LG는 선수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적료 200만 달러에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로의 이적이 성사되는 듯 했다. 하지만 당시 FA가 아니었던 계약 특성상 다른 MLB 구단들이 '우리도 이상훈을 영입할 권리가 있다'며 보스턴의 단독협상에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에는 MLB 사무국까지 개입하며 한-미 양국 간 [[포스팅 시스템|포스팅 제도]]를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이상훈은 MLB 전 구단 스카우터들이 참여하는 공개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포스팅 응찰액이 60만 달러에 그치며 '''몸값이 반 이하로''' 뚝 떨어져버렸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금액에 LG 구단은 이적을 철회했고, 어차피 안고 갈 수 없던 이상훈은[* 당시 해외 진출을 시켜주지 않으면 은퇴해버리겠다고 못 박은 상태였던 데다가 포스팅 실패 후에도 미국에 체류해 절대 귀국하지 않을 기세를 보였다.] 자매 구단인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즈]]에 임대료 2억 엔을 포함, 2년 간 임대 후 완전 이적 조건으로 떠나보냈다. 이 당시의 등번호는 17번으로, 등록명은 삼손 리(SAMSON LEE). 1998년에는 미국 진출 실패와 그에 따른 훈련 부족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5월 9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NPB 데뷔전을 치뤘는데, 모토키 다이스케에게 홈런을 맞는 등 부진했다.[* 모토키에게는 그 후도 6월 6일 경기에서 1사 만루에서 주자 일소의 3루타를 맞기도 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으로부터는 도중에 2군행을 통보받고, 지병인 요통과 혈행 장애가 재발하며 1승에 그쳤다.[* 원래는 팀을 떠나려 했으나 여기서 때려치우면 저기서도 되겠냐는 선동열의 일갈을 듣고 다음 시즌에 배수진을 친다는 마음으로 2군행을 받아들였다. 사실 구단에서도 이상훈을 방출하고 해태가 제안한 임창용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이상훈의 자세를 보고 철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